文言文作品五篇~汉谚对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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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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楼主#
1
我死後埋我骨於哈爾濱公園之傍, 待我國權回復, 返葬故土也. 我往天國, 亦當爲我國家恢復盡力, 汝等爲我告同胞. 各擔國家之責任, 盡國民之義務, 同心一力, 建功樹業, 大韓獨立之聲, 達於天國, 則餘當蹈舞, 呼萬歲矣. 以庚戌陽歷三月二十六日上午十時, 立刑場, 所然而言曰: 余爲大韓獨立而死, 爲東洋平和而死, 死何憾焉, 遂換看韓服, 從容就刑, 年三十有二.  『韓國痛史』
아사후매아골어합이빈공원지방, 대아국권회복, 반장고토야. 아왕천국, 역당위아국가회복진력, 여등위아고동포. 각담국가지책임, 진국민지의무, 동심일력, 건공수업, 대한독립지성, 달어천국, 칙여당도무, 호만세의. 이경술양역삼월이십육일상오십시, 입형장, 소연이언왈: 여위대한독립이사, 위동양평화이사, 사하감언, 수환간한복, 종용취형, 연삼십유이.  『한국통사』
<譯文>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주고, 우리 나라의 주권을 회복하는 날을 기다렸다가 옮기어 고향 땅에 묻어 달라. 내가 천국에 가서 또한 우리 국가 회복을 위해 진력할 터이니, 너희들은 나를 위해 우리 동포에게 고하라. 각기 국가의 책임을 부담하여 국민의 의무를 다하고, 동심일력으로 공을 세우고 업을 수립하여 대한 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리면, 내 마땅히 기뻐 춤추며 만세를 외치겠노라 하였다. 경술년(1910) 양력 3월 26일 상오 10시에 형장에 서서 흔연히 말씀하시되 나는 대한독립을 위하여 죽는 것이며, 동양평화를 위하여 죽는 것인데 죽는다고 어찌 유감스럽겠는가 하고, 드디어 한복으로 갈아입고 조용히 형을 받으시니, 그 때 연세 32세였다.
<註>
이 글은 安重根 義士가 中國 하얼빈(哈爾濱) 감옥에서 최종의 공판이 끝 난 후 두 아우 安定根, 安恭根에게 말씀하신 것임.
返葬 : 이장하다.
汝等 : 두 아우를 말함.
庚戌 : 庚戌年은 곧 1910年으로 그 해 8월 29일에 드디어 國權을 강탈당한 國恥의 해이다.
何憾 : 어찌 유감스럽겠는가.
從容 : 조용하다의 원말.
<著者>
『韓國痛史』는 朴殷植 선생이 1915년 中國 上海에서 출간한 우리 나라 近代史를 엮은 책.
朴殷植(1895~1926) 선생의 號는 白巖, 謙谷. 황해도에서 출생, 1925년 臨時政府 大統領을 지냄. 상해에서 獨立新聞, 韓族會報, 四民報의 주필을 역임. 저서에 『韓國痛史』외에도 『朝鮮上古史考』, 『東明王實記』, 『義士安重根傳』, 『韓國獨立運動之血史』 등이 있음.
 
2
先是, 樂浪有鼓角, 若有敵兵則自鳴, 故令破之. 於是, 崔女將利刀, 潛入庫中, 割鼓面角口, 以報好童, 好童勸王襲樂浪. 崔理以鼓角不鳴, 不備. 我兵掩至城下, 然後知鼓角皆破. 遂殺女子, 出降. 『三國史記』
선시, 낙랑유고각, 약유적병칙자명, 고령파지. 어시, 최여장리도, 잠입고중, 할고면각구, 이보호동, 호동권왕습락랑. 최리이고각불명, 불비. 아병엄지성하, 연후지고각개파. 수살녀자, 출강. 『삼국사기』
<譯文>
이에 앞서 樂浪에 鼓角이 있었는데, 만약 적병이 침입함이 있은 즉 스스로 울므로 이를 깨뜨리도록 한 것이다. 이 때 崔理의 딸은 예리한 칼을 가지고 무기고 속으로 가만히 들어가 鼓角을 부셔버리고 好童에게 알리니, 好童王子는 왕에게 樂浪을 습격하도록 권하였다. 崔理는 鼓角이 울지 않으므로 방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우리 병사가 성 밑에 이르러 엄습한 뒤에야 鼓角이 모두 부셔진 것을 알고 드디어 딸을 죽이고 나와 항복하였다.
<註>
이 이야기는 高句麗 제3대 大武神王 15년 4월에 好童王子가 沃沮를 유람하다가 樂浪의 太守 崔理를 만나, 낙랑으로 가서 崔理의 딸과 결혼한 뒤 高句麗로 돌아와 몰래 사람을 보내어 아내로 하여금 鼓角을 부셔버리도록 하여 낙랑의 太守 崔理를 정벌한 역사이야기다. 好童王子는 父王과 더불어 樂浪을 정벌하였으나, 元妃의 讒訴와 낙랑공주에 대한 사랑의 번민으로 자살함.
樂浪 : 漢四郡의 하나.(B.C 108~A.D 313)
於是 : 이 때,
鼓角 : 북과 나팔.
掩至城下 : 掩에는 ‘가리다’ 외에 ‘불시에 치다’의 뜻도 있음. 성 밑에 이르러 엄습하다.
出降 : 나와 항복하다. 降(강)일 때는 내리다의 뜻.
<著者>
三國史記(삼국사기) : 고려 仁宗 때 金富軾이 紀傳體로 지은 新羅, 高句麗, 百濟의 正史. 1145년에 편찬. 全 50卷 10冊.
 
3
含德之厚
含德之厚, 比於赤子. 蜂蠆虺蛇不螫, 猛獸不據, 攫鳥不搏. 骨弱筋柔而握固, 未知牝牡之合而全作, 精之至也. 終日號而不嗄, 和之至也. 知和曰常, 知常曰明, 益生曰祥. 心使氣曰强, 物壯則老, 謂之不道, 不道早已.   『老子』
함덕지후, 비어적자. 봉채훼사불석, 맹수불극, 확조불박. 골약근유이악고, 미지빈모지합이전작, 정지지야. 종일호이불사, 화지지야. 지화왈상, 지상왈명, 익생왈상. 심사기왈강, 물장칙로, 위지불도, 불도조이.   『노자』
<譯文>
덕을 간직함이 두터운 이는 갖난애에 비길 수 있나니, 벌 전갈 독사도 쏘지 못하고, 맹수도 잡지 못하고, 맹금도 덮치지 못 한다. 뼈가 약하고 근육이 부드러워도 쥠이 단단하고, 암컷과 수컷의 결합을 모르면서도 음경이 일어선다. 이것은 정기의 넘침이다. 온 종일 부르짖어도 목이 쉬지 않는 것은 기가 잘 조화되기 때문이다. 화평의 도리를 아는 것을 常이라 하고, 常 곧 떳떳함을 아는 것을 明이라 하고, 삶을 돕는 것을 祥이라 한다. 정기를 부리는 것을 억지라 하고, 만물은 포악을 부리면 노폐하게 마련이니, 이것이 바로 道에 어긋나면 빨리 멸망할 것이니라.
<註>
赤子 : 갖난 아이
蜂蠆虺 : 벌, 전갈, 살무사.
不螫 : 쏘지 못 하다.
據(극) : 의거할 거, 움킬 극. 의거하다의 뜻일 때는 ‘거’로 발음하고, 움키다의 뜻일 때는 ‘극’으로 발음함.
攫鳥 : 맹금류
不搏 : 덮치지 못하다.
筋柔 : 근육이 부드럽다.
牝牡(빈모) : 암컷과 수컷.
全作 : 어린이아의 陰莖이 벌떡 일어나다의 뜻
不嗄 : 목이 쉬지 않다.
<出典>
姓名 李耳. 字 聃(담). 老聃(노담)이라고도 한다. 楚나라 苦縣(河南省 鹿邑縣) 出生. 중국 고대의 哲學者, 道家의 創始者. 周나라의 衰退를 한탄하고 은퇴할 것을 결심한 후 西方으로 떠났다. 그 도중 관문지기의 요청으로 上下 2편의 冊을 써 주었다고 한다. 이것을 『老子』라고 하며 『道德經』이라고도 하는데, 道家思想의 효시로 일컬어진다.

4
曲則全, 枉則直, 窪則盈, 敝則新, 少則得, 多則惑, 是以聖人抱一爲天下式. 不自見故明, 不自是故彰, 不自伐故有功, 不自矜故長. 夫唯不爭, 故天下莫能與之爭. 古之所謂曲則全者, 豈虛言哉, 誠全而歸之. 『老子』
곡즉전, 왕즉직, 와즉영, 폐즉신, 소즉득, 다즉혹, 시이성인포일위천하식. 불자견고명, 불자시고창, 불자벌고유공, 불자긍고장. 부유불쟁, 고천하막능여지쟁. 고지소위곡즉전자, 개허언재, 성전이귀지. 『노자』
<譯文>
굽은 즉 온전하고, 구부러뜨린 것은 곧을 수 있고, 움푹 패인 것은 찰 수 있고, 낡아 해진 것은 새롭게 될 수 있고, 욕심이 적은 즉 얻을 것이고, 욕심이 많으면 미혹하게 되는 것이니, 이로써 성인은 하나인 도를 지킴으로써 천하의 규범이 된다. 성인은 스스로 낮추어 나타내지 않으므로 도리어 밝게 빛나게 되고, 스스로 옳다고 주장하지 않으므로 도리어 밝게 드러나고, 자기의 공을 자랑하지 않으므로 도리어 공이 두드러지고, 자기의 능력을 자만하지 않으므로 도리어 오래 갈 수가 있다. 대저 성인은 오직 다투지 않으므로 천하에서 그와 더불어 다툴 것이 없는 것이다. 옛사람이 구부러지면 온전하다고 말하였음이 어찌 헛된 말일 것인가. 진실로 闡明을 온전치 해야 道에 복귀하는 것이다.
<註>
曲則全 : 굽은 나무는 쓰이지 않는 까닭에 오히려 꺾이지 않고 생명을 온전히 누릴 수 있음.
枉則直 : 인위적으로 굽힌 것은 또한 사람의 힘으로 곧게 할 수 있어서 쓰이게 된다. 결국 闡明을 온전히 누릴 수 있다는 뜻.
窪(웅덩이 와) : 우묵하다. 낮음
敝(헤질 폐) : 자기를 낮추는 겸양의 뜻으로도 쓰임. 敝社 敝校.
豈虛言哉 : 어찌 虛言이겠는가.
誠(정성 성) : 참으로 진실로의 뜻도 있음
<著者>
姓名 李耳. 字 聃(담). 老聃(노담)이라고도 한다. 楚나라 苦縣(河南省 鹿邑縣) 出生. 중국 고대의 哲學者, 道家의 創始者. 周나라의 衰退를 한탄하고 은퇴할 것을 결심한 후 西方으로 떠났다. 그 도중 관문지기의 요청으로 上下 2편의 冊을 써 주었다고 한다. 이것을 『老子』라고 하며 『道德經』이라고도 하는데, 道家思想의 효시로 일컬어진다.老子

5
文德見隋軍士有饑色, 欲疲之, 每戰輒北, 述等一日之中七戰皆捷. 旣恃驟勝, 又逼群議, 遂進東濟薩水, 去平壤城三十里, 因山爲營. 文德遺仲文詩曰: “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 戰勝功旣高, 知足願云止.” 仲文答書諭之. 文德又遣使詐降, 請於述曰: “若旋師者, 當奉王朝行在所.” 述見士卒, 疲弊不可復戰, 又平壤城險固, 難以猝拔, 遂因其詐而還, 爲方陣而行. 『三國史記』
문덕견수군사유기색, 욕피지, 매전첩배, 술등일일지중칠전개첩. 기시취승, 우핍군의, 수진동제살수, 거평양성삼십리, 인산위영. 문덕유중문시왈: “신책구천문, 묘산궁지리, 전승공기고, 지족원운지.” 중문답서유지. 문덕우견사사강, 청어술왈: “약선사자, 당봉왕조행재소.” 술견사졸, 피폐불가복전, 우평양성험고, 난이졸발, 수인기사이환, 위방진이행. 『삼국사기』
<譯文>
乙支文德은 隋나라 군사들이 굶주린 기색이 있는 것을 보고, 이를 더 피로하게 만들려고 매번 싸우다가 문득 패하고 하니, 宇文述 등은 하루에 일곱 번을 싸워서 모두 승리하고도 이미 이김에 도취되어 믿고 또 진격할 것을 의논하고 드디어 동쪽으로 나아가 살수(청천강)를 건너 平壤城에서 30리 되는 곳에 이르러 산에 의지하여 병영을 치고 있었다. 乙支文德은 于仲文에게 詩를 지어 보내기를 “신기한 계책은 천문을 窮究하고, 오묘한 계산은 지리를 통달하여, 싸움마다 이겨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함을 알고 그만 싸움을 그칠 것을 바란다.”하니, 于仲文이 답서를 보내 와, 乙支文德은 또 사자를 파견하여 거짓으로 항복하는 척하며 宇文述에게 청하기를 “만약 군사를 돌리면 곧 왕과 함께 煬帝의 머문 곳을 찾아뵙겠다.”고 하였다. 이 때 宇文述은 군사를 돌아보니 피폐하여 다시 싸울 수 없을 것 같고, 또한 平壤城은 험하고 튼튼하여 함락시키기 어려우므로 드디어 그 거짓 항복한 것을 기회로 군사를 돌려 方陣을 만들어 달아났다.
<註>
文德 : 乙支文德 장군. 고구려 제26대 嬰陽王 23년(612)에 隋나라 煬帝가 宇文述과 于仲文을 대장으로 30만 군대를 이끌고 침략한 것을 살수에서 대파하였다.
輒北 : 문득 패하다. 輒은 ‘문득’의 뜻.
北 : 敗北
述 : 隋나라 장수 宇文述. 字는 伯通. 陳나라를 평정한 공으로 安州總管이 됨.
薩水 : 淸川江
仲文 : 隋나라 장수 于仲文. 살수에서 대패하여 하옥되었다가 憤死함.
行在所 : 왕이 일시 거처하는 곳. 여기서는 隋煬帝가 머물던 곳을 말함.
方陣 : 병사를 사각형으로 배치하는 대형.
<出典>
三國史記(삼국사기) : 고려 仁宗 때 金富軾이 紀傳體로 지은 新羅, 高句麗, 百濟의 正史. 1145년에 편찬. 全 50卷 10冊.
ΓΝΩΘΙ ΣΕΑΥΤΟΝ
2009-04-29 14:27
写私信
沙发#
과연 王女自鳴鼓란 영화의 출처 여긴로구나!
冷静地思考,谦虚地求教,深入地讨论。
2009-08-17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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板凳#
古文更好懂,呵呵
2010-01-10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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地板#
但是说起来会让人很迷惑
得意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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